박경득은 1937년 12월 25일 경기도
화성군(현 경기도 화성시)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그는 메릴랜드 대학교 미8군 분교를
졸업하였으며, 키 168cm,
체중 69kg의 체격을 가졌다.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사도 요한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천주교 신자로서 성당에서
연극을 하며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본당 학생회 활동도 병행했다.
1954년 극단 '동협'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연기에 입문했고,
1955년에는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가
극작가 우천 오영진으로부터 연기 지도를 받았다.
1959년 국립극장 연기인양성소 1기
과정을 수료한 후, 1962년 국립극장 출범
멤버로 활동했다.
1963년에는
'동인극장'으로 옮겼고,
1966년부터 1974년까지는 국립극단에서
전속으로 활약했다.
영화계 진출은
1956년으로, 극예술연구회 활동 중
영화감독 송국의 눈에 띄어 영화 <
첫사랑> (1958년 개봉)으로 은막에 데뷔했다.
1974년에는 KBS 탤런트로 특채되어
1975년 일일연속극 < 대동강> 에서
김일성 역을 맡으며 브라운관에 첫 등장했다.
박경득은 < 개국> 의 이자춘,
< 용의 눈물> 의 소 사다모리,
< 태조 왕건> 의 박연식 등 사극에서
굵직한 역할을 맡아 활약했다.
영화계에서는 주로 국방부
국군영화제작소(현 국방홍보원) 작품인
< 전선3대>, < 멀고 먼 해후>
등에 출연했다.
1988년에는 현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의 전신인
'서울방송연예인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하여 1990년까지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
이를 통해 연기자들의 권익 향상에 크게
기여했으며, 출연료, 야외촬영 수당,
숙박비, 교통비 등을 대폭 인상하고
재방송료 지급 규정의 시초를 마련하는 등
연기자들의 처우 개선에 힘썼다.
박경득은 50여 년간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연기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노력으로 인해 현재 한국의
연기자들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11월 28일, 향년 86세로 숙환으로 별세했다.
그의 발인은 11월 30일 오후 5시에
진행되었으며, 장지는 1차 서울추모공원,
2차 비봉추모공원에 마련되었다.